에스까페아르

낯선 평온

Oct 4 – Oct 13, 2025


Artist

에스까페아르


About

“나는 요즘 낯선 평온을 경험중이다.”

갤러리 담은 에스까페아르 작가의 여섯 번째 개인전 <낯선 평온>을 개최한다.


작가는 “자기 구축축적이며 고착화된 충동을 표현할 수도 있는, 자발적인 열정적 추측의 상태”로서의 ‘순수한 페티시즘’을 보여준다.


응시와 집중을 통해 캔버스를 사랑하는 방식을 통해, 그림은 ‘힐링’이라는 보편화된 이상에 감히 도전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시대를 반영하고 또한 그 안에서의 괴리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낯선 평온’의 메시지이다.


-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작업을 시작한 이래 올해가 개인 서사적으로 가장 큰 폭의 변화를 겪고 있다”며 더불어 90년대생으로서 평화와 희망의 시대를 주입받으며 살아왔지만, 지금의 전쟁상황, 이상기후, 인간과 기계의 결합 등 최근 몇 년간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어졌다. 일상을 따라잡기엔 변화하는 속도가 이젠 추월해버린 느낌이다.”라고 우리 시대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 전시는 개인의 심리와 행동을 기반으로 한 작업이 사회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음을 보여준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켕이 말한 “매우 단호하고 자율적인 개인들이라고 스스로에게 품고 있는 환영의 그림에 대한 집단적 재현의 부차적 효과”과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 배민영 평론가는 ‘페티시의 사회학적 효용에 관하여’에서 “예술 그 자체가 페티시”라 말한 부르디외를 인용하며,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예술을 결합한 에스까페아르의 세계를 조명하였다.


- 그러면서 ‘낯설다’는 단어가 주는 감정이 ‘생경하다’, ‘이질적이다’는 말보다 오히려 더 대중들에게 열려 있다"는 점에 주목, "낯선 사람, 낯선 장소, 낯선 시선 등 영어만 해도 ‘strange’, ‘unfamiliar’, ‘odd’ 등 여러 방식으로 번역 가능하다. 다만 여기서 ‘낯익은 대상에서 낯섦을 느꼈을 때의 섬뜩한 감정’을 주로 의미하는 ‘uncanny’로 명명한 것은 그 감정에 대한 강요라기보다는 느슨한 표출"이라고 논평했다.


- 에스까페아르작가의 작업 방식은 정신적 증상이자 의학용어인 아포페니아(Apophenia)의 한 유형인 파레이돌리아(pareidolia)와도 관련이 있다고 한다. “형태가 없거나 모호한 시각적 자극에서 명확하고 식별할 수 있는 패턴을 추출하려는 심리, 또는 그러한 심리에서 비롯된 일종의 착시 현상”은 그의 작업 방식과 연결된다.

- 최초에는 손가는 대로 선을 긋는 무의식적 선들의 결합에서 시작했다. 드로잉적 요소가 강했던 종이 그림에서 아크릴을 잔뜩 묻힌 붓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선과 면이 결합하며 그야말로 “‘감각적인 물질성’과 지각하는 정신 사이의 직접적인 관련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그러한 강제적 즉흥성이 스트레스가 강하고 그리던 것만 그리게 되는 맹점이 보여서 아예 수세미, 붓, 손가락 등으로 바탕 자체를 마음대로 마구 휘젓고 두드리는 임의적 바탕을 만들어 말린다. 작가에 의해 ‘그려진’ 마른 바탕을 기반으로 그 순간 보여지는 무언가, 특히 눈, 코, 입을 찾아가게 되었다.


- 작가는 “마치 하늘에 구름을 마구 흩어 놓고 이미지를 찾는 방식”이라고 설명할 즈음이 되자, 비로소 “비합리적인 절대적 헌신을 향하여 자기 구축적이고 고착화된 충동을 표현할 수도 있는, 자발적인 열정적 추측의 상태”가 되었다. 보여지는 것에 의해, 보여지는 것을 위해 계속해서 보게 되었다.

Artist Statement 

나는 욕망과 두려움이 맞닿은 자리를 오래 응시해왔다.
편리함은 우리를 앞으로 밀어내지만, 동시에 더 깊은 감시 속으로 끌어들인다.
민주주의는 평온을 말하지만, 그 평온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
우리가 믿는 시스템조차 균열 위에 서 있다.

「겹쳐진 묵시」가 아포칼립스의 전주곡이었다면,
「낯선 평온」은 그 이후를 묻는다.
뜨거워지는 지구 위에서 인간이 사라진 자리,
그곳은 자연의 귀환일까, 혹은 알 수 없는 다른 풍경일까.

올해 나는 스스로에게 낯선 시간을 건너왔다.
거울 속의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내가 아니었다.
자화상은 그 낯섦의 기록이다.
개인의 균열과 사회의 균열은 서로 다른 얼굴로 겹쳐진다.

이번 전시는 평온의 얼굴 뒤에 감춰진 불안을 드러낸다.

그 불안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의 문턱이다.

균열 위에서만 비로소 새로운 풍경은 열린다.

Selected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