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In the Mood for Stillness_집의 고요

May 1 - May 9, 2026


Artist

김선기

About

사라지는 풍경이 건네는 가장 내밀한 안부


제주의 빈집, 그 텅 빈 충만함에 대하여 김선기 작가는 아내의 고향인 제주로 거처를 옮긴 후, 섬 곳곳에 흩어진 '빈집'들을 마주했다. 누군가의 삶이 뜨겁게 머물다 떠난 그곳에는 닫힌 대문 대신 정낭이 놓여 있고, 사람의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를 제주의 바람과 빛이 채우고 있다. 작가에게 이 빈집들은 단순히 허물어져 가는 폐가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의 천진난만한 그림처럼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도,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집의 원형'을 환기시킨다.


과거의 할머니와 미래의 아이를 잇는 정적의 시간 작가의 시선은 눈앞의 빈집을 넘어 자신의 사적인 역사로 침잠한다. 치매로 투병하던 할머니가 집을 떠나던 과정을 기록했던 전작의 기억은, 이제 새로 태어난 아이와 함께 살아갈 미래의 집으로 이어진다. 제주의 빈집 앞에서 작가는 유년 시절 마당에 감나무가 있던 옛집의 숨소리와 지하실의 공포, 그리고 앞으로 아이에게 전해주고 싶은 집의 충만함을 동시에 길어 올린다.


멈춰진 화면 속에서 흐르는 생의 리듬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지독하리만큼 고요하다. 하지만 그 정적은 멈춤이 아니라, 삶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들이 모여드는 활성화된 시간이다. 거대한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의 낮은 지붕 아래 멈춰 선 그의 카메라는, 사라져가는 것들이 어제의 옛집과 내일의 새로운 집을 어떻게 연결하는지 묵묵히 증명해 낸다.



Artist Statement

In the Mood for Stillness 

집의 고요


우리집은

대문이 없다.

밥 먹은 것

길에서도 다 보인다.

지나가는 사람 불러

“어이 밥 좀 묵고 가”

“나 밥 묵었는디”

밥 먹었으면

그냥 가면 되지

들어와 앉아

밥 먹는다.

똘방에 금세 고무신이

까마귀 떼다.


김용택 “밥”


대문이 없는 동네가 있다. 그곳의 옛 집들엔 꽉 닫힌 대문 대신 집 주인의 거처를 알리는 정낭이 있었다. 정낭은 짐승들의 출입을 막기 위한 도구였기에 집 안이 훤히 보이는 열린 대문이었다. 지금도 그곳은 대문이 없거나 있어도 활짝 열려 있는 집들이 많다. 아내의 고향 제주, 그녀의 고향집은 도심에 있어도 대문이 항상 열려 있을 정도이다. 제주는 여전히 아파트가 아닌 주택 중심의 문화이고 집이 마을을 이루고 있다.


그 마을이 사라져 버릴 거 같았다.


‘고요하다.

인적이 사라진 곳엔 바람 소리, 파도 소리만이 정적을 메우고 있다.

적막강산이다.’


‘In the Mood for Stillness’는 제주 빈집의 풍경을 담은 사진 연작이다.

제주도 빈집에 시선이 머물렀던 것은 여행지가 아닌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고향인 제주에서 아기를 키우면서 마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빈집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던 것은 눈앞에 보이는 풍경들이 곧 신기루가 될 것이라는 상상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잠시나마 주택에 살았던 나에게 집이 없어진다는 것은 커다란 인생 하나가 사라지는 것으로 다가왔다. 그저 몇 년 동안의 주택 살이었지만 가을이면 열리던 감나무의 고즈넉함, 마당에서 뛰놀던 강아지의 숨소리, 미로와 같았던 지하실의 공포감은 지금도 생생한 유년 시절의 풍경이다. 결혼 전까지 한 집에서 살며 켜켜이 추억을 쌓아왔던 아내는 고향집에 갈 때마다 그 기억을 쉽게 소환할 수 있다. 집의 정서가 주는 안정감은 제2의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주택이 낭만이 된 것은 현재진행이 아닌 과거일지도 모른다.

주택 살이의 낭만은 수고로움과 불편함을 견디는 자들만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 

낭만은 다시 못 올 것이라는 노랫말이 있다. 낭만의 반대말은 현실이 아닌 야만임을 우리는 서울 그리고 지역 곳곳에 들어선 아파트를 보며 느낄 수 있다.


제주는 한때 이주 열풍이 불 정도로 도시를 떠나 사람들이 몰려왔던 지방의 유일한 지역이었다. 제주 유입 인구 감소와 함께 개발 광풍은 잦아든 것 같지만 여전히 새 숙박 시설과 거주 시설 공사는 한창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빈집도 늘어가고 있다. 과거 제주도에 많은 것이 바람, 여자, 돌이었다면 지금은 그 자리를 카페, 펜션 그리고 빈집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폐가의 혐오스러운 풍경과 달리 사람의 온기가 남아 있는 ‘제주의 빈집’을 보면서 나는 곧 사라질 풍경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계절이 지났음에도 수확하지 않아 바닥에 떨어진 귤’

‘때로는 빈집의 주인으로 만나는 고양이들 그리고 무성한 잡초들’


을씨년스러운 공포감이 집을 둘러싸기 전의 그 공간에는 제주의 정취가 스며들어 애잔한 정서가 남아 있다. 나는 빈집의 모습을 바라보며 슬프지만 아름답다는 양가의 감정을 느꼈다. 집에도 인연이 있다면 그곳에 불이 켜지고 다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를 상상하며, 적막한 공간에 숨결을 불어 넣는 마음으로 마을 곳곳을 다니며 빈집의 서정적 풍경을 기록하였다.


Selected Works